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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llovewithbiglust2 2022.01.18~2022.06.03

lillovewithbiglust 2024. 11. 30.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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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명하게 기억하는 일이 뭐가 있을까.
더는 아무것도 나에 대해 분석하고 싶지 않다. 몇 년 동안 나는 나를 너무 많이 분석했고, 모든 게 다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나는 나 자신과 너무 많은 이야기를 써 내려갔기 때문에 더는 설명할 힘이 없다. 몇 년 동안 써왔던 나의 일기들. 무기력, 고통, 슬픔, 자괴감, 분노, 두려움, 공허함으로 가득 찬 이 수많은 일기들도 다 허상같다. 다 내가 만들어낸 착각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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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말하지만
딱히 낙원을 바라고 도망친 것도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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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말하지만 실종되는 것보단 죽어서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게 나아. 그러니까 없어지지 말고 차라리 죽어. 진짜 죽으란 소리가 아니야. 없어지지도 말고 죽지도 마. 내 마음 알지. 응.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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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가 부럽다.
당신의 아픔은 시라도 되는구나.
난 아무것도 되지 못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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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온전히 우리였던 때를 기억해
가진 건 쥐뿔도 없었지만
그거 하나로 버텼던 날 기억해
그때 너와 처음 들었던 노래
처음 먹었던 음식
처음 맡았던 냄새
처음 가봤던 거리
내 안엔 여전해
어쩌면 평생 이럴지도
이렇게 평생 날 묶은채로 살 수는 없잖아
아니 이렇게라도 살아야 하는 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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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를 마냥 즐겁게 해주기 보단
텅 빈 나를 알게 해주는 편에 가까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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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다는 것은
문을 열고 나가
문 뒤에 영원히 기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다지 멀리 가지도 못하면서
고작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 있는게 전부면서
그 전부가 전부를 만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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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가까운 사람과 가장 먼 곳으로 가보아야 심장이 산산조각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는 너와 함께 최대한 멀리 가보았다
 
 

옥아

시간이 지나면 내가 받은 상처보다 내가 준 상처가 더 오래 남더라. 그러니까 너무 아파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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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은 기다림의 대상이 오리라는 확신만 있다면 언제나 가슴이 뻐근할 만큼 고통스러운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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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게 죄는 아니지
외로워서 한 행동들이 죄가 될 순 있어도
그래서 난 죄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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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는 체념과 다름이 아닌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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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지?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착각이 지금의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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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을 모두 없애면 무엇이 남을까
무엇이 남긴 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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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는 모든 것이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아
해변가에 찍힌 발자국이 내일이면 다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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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전혀 신뢰할 수 없고 내가 하는 모든 작은 말과 행동까지도 의심한다 간단한 숫자 계산을 하는데도 계산기에 같은 숫자를 수십번씩 다시 눌러보고 일상적인 문자에 답장을 할 때도 수십번씩 지웠다가 다시 쓰기를 반복한다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해체되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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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만 잔다 가끔 정신을 붙들기 위해서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린다 깨어있으면 내 자신을 견딜 수가 없고 자기 혐오가 너무 심해져서 괴롭기 때문에 다시 잠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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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걸 보고 감동하는 마음이 사라졌으면 좋겠다 이젠 그런 마음까지도 나를 아프게 한다 가시처럼 찌른다
 

 

새벽 세시 이십분. 외로움.

생의 본질적인 외로움
아무리 대화를 하고 마음을 나누어도
인생의 어떤 부분은 올곧이 홀로 견뎌야 한다는 것
평생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할 부분이 있다는 것
하여 영원히 외롭지 않을 관계를 추구하기 보다는
때로의 관계나 만남이 주는 기꺼운 온기에 기뻐할 줄 아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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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게 내 마음을 부숴버리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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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때문에 너 아닌 것들을 많이도 아프게 했는데
결국엔 너 마저 아프게 하고
너라서 너니까 너라도 지키기 위해 했던 모든 일들이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는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것을 잃는 것
그것이 나의 삶일지라도
헛살았다는 느낌
피로감과 미미한 허탈감
너와 닮기 위해 또 닮지 않기 위해 얼마나 안달했는지
그래도 한때는 최선을 다해 방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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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생기리라는 희망만큼 절박하고 비참한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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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벌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지울 수 없다
도대체 내가 반성하고 뉘우쳐야 하는 건 뭘까
누구라도 좋으니 부디 알려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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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관하여 영원히 딜레탕트로 남는 것
불안에 관하여 가장 전문적이고 능수능란해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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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 청춘의 시간은 이미 노인이 되어버린 시절인지도 모른다. 노인처럼 세상을 다 산듯 살았으나 노쇠하지는 않아서 희망을 희구하지 않았고 너절한 삶을 용서하지도 않은 채로 환멸을 에너지 삼아 숨을 쉰다. 소중한 것이 없다. 그래서 몸과 마음을 아무데나 두는 것이 무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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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버려도 그것은 버려지지 않는다
다만 버리려는 마음이 사라질 때 그것도 함께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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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불행은 네가 완전히 절망할 수 없다는 사실에서 온다. 네가 너를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은 아직 더 잃을 것이 있기 때문이다. 초토라고 너는 말하지만 속으로는 희망에 매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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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이제 나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냥 모르는 채로 두고 싶다. 이 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사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러 그런 것을 반추하는 자체가 무의미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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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상처고
인생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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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원회귀를 읽으면서 누구를 떠올렸겠는가. 당연히 너다. 나는 너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끔찍하고 참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와 함께 했던 아름다운 시간마저 모두 부정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서울에서 너와 함께 했던 시절은 내 인생의 정점이었다. 전에 없었던 기쁨이었다. 삶의 가장 기쁜 순간을 반복하기 위해서라면 가장 끔찍한 순간마저 얼마든지 되풀이하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나는 니체가 되어, 니체는 차라투스트라가 되어 큰 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그것이 삶이었던가?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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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회귀는 동일한 것의 영원한 반복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과거의 인생을 반복하고 있고 그것을 다시 영원히 반복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은 끔찍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니체의 영원회귀는 모든 것이 영원히 반복되더라도 좋을 만큼 모든 순간에 주체적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상관없다고, 이토록 끔찍한 삶이라도 내 것이라고 외치라는 것이다. 나아가 그런 삶을 사랑하라 주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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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조차도 의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다
나는 나 스스로를 의심하는 데 익숙하여 인생의 대부분을 그 의심의 심연에서 보낼 것이다
스스로를 의아해하는 인간
믿음이나 사랑이 도착할 수 없는 영혼의 플랫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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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한 번 헤어지기 위해 만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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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정말 어려운 것은 더러워지더라도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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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얼마나, 뭘,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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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은데
괜찮지 않은 게 익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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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그랬니
힘든 건 불행이 아니라
행복을 기다리는 게 지겨운 거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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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생각은 생각만으로 죄가 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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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는 않았지만 영원히 못 만나는 사람과 죽음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도 없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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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나의 헛된 기록들
죽은 이가 팔로우하는 쓸쓸한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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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전부가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단어

사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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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 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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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싶다는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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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나를 향해 칼을 들이민다.
그러나 내게 향한 건 날이 아닌 손잡이다.
 
 

전략의 세가지 측면

첫째, 내가 어디에 있는지
둘째,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셋째, 그곳에 어떻게 갈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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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너무나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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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히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거지
세상에 충분한 사랑이 있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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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걸으면 죽을 것 같아서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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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하고싶은 것은
음악을 들으면서 걷는것
꿈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자는 것
이 두 가지 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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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았다
내가 살았다
그런데도 내가 살지 않은 것만 같다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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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라
날아오르기 위해서는 날아야 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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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란 무엇인가?
어려운 건 어렵게 얻겠다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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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작년은 철저한 자기학대의 해였다. 그가 나를 버린 것에 대한 복수의 방법으로 택한 것이 그것이었다. 그는 그것을 알 수도 볼 수도 없었는데 말이다. 이제 그런 신파 놀이는 그만해야 한다. 남 보기에도 혐오스러울 것이고 나 역시도 이런 스스로가 지겹고 진절머리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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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가난하고 적당히 불행하게 태어나 평생 스스로를 건설하며 살도록 운명 지어진 것에 나는 신께 감사한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저 지루하고 지리멸렬한 인간들과 한 치의 다름도 없이 살아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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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그렇게 힘드냐고 묻는다면 참 할 말이 없구나.
그것이 나의 불행인가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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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이미지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가 마음을 이끌 때 우리는 스스로를 속인다. 그리고 그 대가는 자괴감과 모멸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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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단코 ‘나’를 장악하며 한 생애를 살아야 할 사람이다.
아버지는 못 했지만 나는 해내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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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혁이 나를 탐색하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선택을 위한 탐색.
그것은 곧 나에 대한 애정에 맹목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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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싫어하는 인간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말을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표현으로 길게 하는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말이다. 그런 말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은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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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잰 듯이 빈틈없는 우연은 우연일까 운명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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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속에서 막연히 부유하던 생각들도 정색을 하고 정리를 해보면 깜짝 놀랄 만큼 심각해지는 것이 정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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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목표
1. ERP정보관리사 인사1급, IFRS관리사 취득하기
2. 학점 4.0이상 유지
3. 독서 50권
4. 살 더도말고 덜도말고 5kg만 빼기
5. 캐쥬얼 섹스 하지 않기
6. 적금 유지 잘 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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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생각해 봐
우리가 사는 게 사막이고
내가 물 한 컵이었다면
네가 나를 버렸을 것 같아?
 
 

인과관계 3기준 (X→Y)

1. X는 Y보다 먼저 발생해야 한다. (시간적 선행성)
2. X가 일어나면 Y도 일어나야 한다. (동반발생)
3. 다른 설명이 가능하지 않아야 한다. (대체설명 부재)
 

외모는 딱 내 취향인데 인격은 그렇지 못한 남자는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참 서글퍼진다. 보고만 있어도 서글프니 깊이 엮이면 훨씬 더 서글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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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생각이 많아지고 있어
나는 살 수도 죽을 수도 없이 세상 한쪽으로 떠밀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
아주 잠깐이지만 떠난 사람들을 생각했고
추억으로 가득찬 무거운 방을 생각했고
처음 알았지만 젖어도 불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고
재가 되어야 끝나는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았어
아, 물론 이제부터 재의 이야기가 시작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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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 손 내밀 수 있을까
 

목표의 기준

순위의 확립
계량화
현실성
일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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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종종 내 마음보다는 내 지성과 재능을 더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내게는 내 마음만이 유일한 자랑거리이며, 오직 그것만이 모든 것의 원천, 즉 모든 힘과 행복과 불행의 원인이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은 누구나 다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은 나 혼자만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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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 종종 나오는 네가
꿈만 같아 왜냐면 꿈이니까
 
 

하루종일 잠만 잔다

뭣 때문에 일어나야만 하는지, 또 왜 잠자리에 들어야 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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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해 네가 나에게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나를 잠시동안이지만 죽도록 사랑해줬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너를 미워할 수가 없어
 
 

고통은 나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고통은 나의 전부가 아니라 전체의 일부이다. 나는 내가 원할 때 고통과 거리를 둘 수 있고 고통을 객관화 하여 바라볼 수 있다. 나는 내 고통을 통제할 수 있다.
 
 

고집멸도

첫째, 인생은 고통으로 만연되어 있다.
둘째, 고통에는 원인이 있다.
셋째, 고통은 멈출 수 있다.
넷째, 고통을 멈추기 위한 올바른 길이 있다.

 

모든 것엔 아무 의미도 없어

나는 내가 실패하길 바라는 사람들을 실망시킬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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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처럼 참 예쁘고 해로운 것도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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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헛되다는 이 기분이랑 평생 싸워야돼
 
 

문제

붓다는 문제가 있으면 풀려고 노력하되 끝내 풀수 없다면 더이상 그것을 문제로 여기지 말라고 하였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끝내 풀 수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는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 결국 모든 것은 그 판단력에 달려 있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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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네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곤 하지만 결론은 늘 한가지다. 너는 그럴 수 있어서 그랬던 것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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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가진 동정심에 네가 포함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동정이다.
붓다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만큼 강해질 수가 없는 걸까. 이렇게까지 노력하는데도 왜 나아지지 않는 걸까.
 
 

나의 상처이자 나의 자랑

잘 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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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파적으로 굴고 싶진 않지만 나는 너를 위해 죽을 수도 있었을 거야. 네가 저버린 건 그런 내 사랑이야. 내가 잃은 건 나를 기만한 인간이고 네가 잃은 건 그런 사랑이야. 누가 더 많은 것을 잃었는지 경쟁하고 싶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 경쟁에서 나는 패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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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어느 누구도 나만큼 나를 잔인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쉬웠을지도 모른다.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을 용인하는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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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죽고 나서도 나에게 이렇게 기억되고 말해지고 있어. 그렇다면 너는 죽은 걸까 아닌 걸까.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들어. 이게 다 무슨 소용일까. 사람이 사람을 기억하는 일, 이 세상에 머물다 사라진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 말이야. 너를 기억하는 나도,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도, 그 누군가를 기억하는 누군가도, 모두 언젠간 싸그리 사라져버릴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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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선 평가하거나 저항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던히 사는 법이라고들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재능은 타고 나지 않았다. 내가 타고난 재능은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속이지 않는 재능이다. 부당한 일은 부당함을 느끼고, 슬픈 일은 슬픔을 느끼는. 그래서 나는 때때로 죽을만큼 부당하고, 슬프고, 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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헛간이 불에 타 무너져 내렸다.
나는 이제 달을 볼 수 있다.
 
 

세상이 이렇게 말하는것 같아

죽지마.
살아서 고통받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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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는 것 조차 죄를 짓는 것처럼 느껴져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네 가지

1. 사랑
2. 목적
3.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약간의 여윳돈
4. 최소 하나 이상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소속감 (직장, 학교, 단체 등)
 
 

사람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사람의 뇌는 그 즉시 코끼리를 생각하고 만다. 하지 말라고 말하면 오히려 강조하는 효과가 나는 것이다. 그래서 부정형을 긍정형으로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소파에서 먹지 마라”고 말하는 대신 “식탁에서 먹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 말라고 말하는 대신 하길 바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파일럿들이나 스키선수는 장애물이 보이면 “장애물을 박으면 안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면 장애물을 박게 되기 때문이다. 대신 “길을 따라가”라고 생각한다. 그러면 길에 집중하면서 길을 따라가게 된다. 모든 것이 이와 같다. 장애물에 집중하면 장애물만 보인다. 장애물 사이의 길에 집중하면 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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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과 조부모님으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고 있으며,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고, 의식주를 포함한 여러 부분에서 도움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물에 빠지고 있는데 나를 붙잡아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기분에는 변함이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핵심적인 감정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진실과 상반된 왜곡된 감정이란 말인가? 지금까지 나는 스스로를 늘 버림받고 방치된 사람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하지만 실제로 나는 다른 정신질환자들에 비해 꽤나 양질의 치료를 받고 있으며 부모님은 때를 놓치긴 했지만 현재는 나에게 많은 지지와 관심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부모님의 이혼과 아버지의 폭력, 어머니의 냉대가 나의 유년시절 아예 없었던 사실이 아니므로 혼란스럽기도 하다. 내가 인생을 살아가며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던질 질문은, 내가 인식하는 것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부분이 정확하고 얼마나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나의 기억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고 어디까지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 나의 감정은 얼마나 객관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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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에 대한 감탄과 나에 대한 절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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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적으로는 누구나 고통을 느낀다는 걸 알고 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저마다의 고통에 시달리며 살아간다. 그렇다면 내가 이렇게 못견뎌 하는 이유는 내 고통이 그들보다 훨씬 크기 때문인걸까, 아니면 내가 훨씬 약하기 때문인걸까? 정서적 고통의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경계는 어디쯤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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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야 한다, 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무엇으로, 어떻게?
변하라는 지시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라는 것인가,
아니면 내 자신에 더욱 충실해지라는 것인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로 변해야 한다면 그것을 연기가 아닌 나라고 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들이 머리 위를 빙빙 맴돈다.
 

회복2

가령 알코올중독의 경우, 회복되면 술을 마시기 이전의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 정신병의 경우, 몇가지 증상에서 벗어나면 어느 정도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됐다는 진단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갈 굳건한 자아가 없다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또는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이 기본적으로 망가진 상태라면? 기억하는 것이라곤 온통 고통과 외로움 뿐이라서 ‘정상적인 상태’, ‘건강한 상태’가 어떤 건지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면? 그러니 아무리 약을 먹고 상담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단순히 병적인 증상을 억누르는 데 그칠 뿐 근본적인 ‘회복’을 가져오지 않는다.
 
 

회복

회복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그렇다, 나는 망가졌고, 회복이 필요하다,
그러나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회복되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가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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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고통이 제자리를 찾게 하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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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부터 이 막막함을 위로받을 수 있을까?
 
 

사라진다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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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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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무의미하다.
더이상은 견딜 수 없다.
더 앞으로 갈 수 없다.
가고 싶지 않다.
 
 

할머니는 감정 드라큘라

하지만 내가 할머니를 이렇게 부르는 것은 옳은 것인가?
내게 그럴 자격이 있을까?
할머니를 미워할 자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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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숨을 쓰레기처럼 던져버리고 싶어.
가능한 한 최대한 하찮은 방법으로.
 
 

지금 당장 죽어버릴것만 같은 기분

아무에게도 닿을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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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do me wrong
but it feels right

너였다면

너였다면 어떨것 같아
이런 미친날들이
네 하루가 되면 말야

 

다시는 아프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자

완치라는 헛된 희망에 매일의 삶을 내맡기는 대신 아픈 내 자신을 인정하고 원하는 것을 하며 살아가자.